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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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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달자립센터 작성일19-12-30 14:26 조회7,6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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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지체장애 남성우 씨의 삶 - ③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12-27 10:16:11

“그 무렵 한 지인이 대리운전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대리운전은 무슨 돈으로 시작했을까.

“대리운전을 해 보겠다니까 부모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에게는 그야말로 못 말리는 아들이었다. 대전에서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서울에는 이미 대리운전이 활성화 되었는데 대전은 그때까지는 미개척지여서 처음에는 재미있었습니다.”

장애인 배려zone 설치.  ⓒ이복남에이블포토로 보기 장애인 배려zone 설치. ⓒ이복남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었다. 일 년 쯤 지나자 대리기사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대전 토박이들도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대리기사들이 다 토박이들이라 그쪽으로만 갔다.

“지금은 괜찮지만, 그때는 타향살이 설움을 톡톡히 당했습니다.”

타지에서 온 그의 대리운전은 기사도 구하기가 힘들었고, 고객도 점점 떨어졌다.

“1년 반 만에 7~8천을 까먹었습니다.”

그 무렵 대전지체장애인협회(이하 지장협) 유성지회에서 콜이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별로 인지하고 싶지 않았기에 장애인단체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

“제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정말로 장애인이 되는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자꾸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니 잘 안 되는 것 같은 자괴감도 들었다.

“유성지회에서 처음에는 조직부장을 맡았습니다.”

지장협 지회에서는 월급이 없을 텐데 무얼 먹고 살았을까.

“가진 재산 다 털어먹고 빈털터리가 되어 하는 수 없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습니다.”

장애인단체 일을 하면서 그제야 장애인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직도 배우는 중이지만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 후 지장협 유성지회에서 부회장을 맡았다. 그 무렵 전국에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일을 돈을 받고 한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생소했습니다.”

우수활동지원사 표창. ⓒ이복남에이블포토로 보기 우수활동지원사 표창. ⓒ이복남
중증장애인을 케어하는 일이 사업이 된다는 것도 신기했다. 이것이 2007년부터 ‘활동보조’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이다.

남성우 씨와 같이 온 활동지원사 A 씨도 그때까지는 남성우 씨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였다고 했다. 그래서 A 씨는 어차피 하던 일이니까 별로 시간에 구애를 안 받는다고 했다.

“2006년 12월 유성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장협 유성지회장과 유성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센터) 소장을 겸임했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법이다. 모든 것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했고 돈도 없어서 여기저기 사비를 끌어다 섰다.

“그러나 저보다 먼저 시작한 선배들이 있어서 조금은 수월했습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이 가능하도록 서비스 지원체제를 구축하여 그들의 독립적인 생활을 이끌어 내어 지역 내 주민들과 더불어 발전하는 지역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다른 곳과 조금이라도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 사람 중심 가치를 바탕에 두고 장애인을 존중하며 존중받는 활동지원사. 활동지원사와 장애인이 다함께 행복한 활동지원서비스제공기관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일을 했습니다.”

주변에서도 조금씩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역 내 장애인 이용자도 늘어나고 활동지원사도 늘어났다.

“현재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은 이용자가 330명, 활동지원사가 312명, 그리고 직원이 10명이나 되는 센터로 발전했습니다.”

권선택 대전시장과 함께. ⓒ이복남에이블포토로 보기 권선택 대전시장과 함께. ⓒ이복남
사람 중심 가치를 활동지원제도 및 규칙에 의거해 업무를 대응하다 보면 간과하거나 놓칠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사람 중심 가치를 바탕으로 공감과 소통을 우선순위에 두고 장애인 활동지원사업을 하다 보니 “다른 기관보다 따스한 대우를 받는다.”는 활동지원사의 인사를 많이 듣는 편이란다.

또한 이용자의 개별적 욕구와 문제에 맞춘 개별 맞춤형 사례관리를 통해 전문가·학계·지역사회 유관기관을 통한 지역사회네트워크 형성 구축 및 사후관리를 통해 서비스 이용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한다.

연도가 지날수록 근로기준법도 강화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제도가 아닌 활동지원서비스 케어 중 발생하는 업무상 재해, 병가 및 휴게시간, 눈치 보지 않는 육아휴직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는 장기근속수당, 연차수당 지급 및 복리후생 등의 근로환경개선 및 처우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에도 떨어졌다고 했는데, 일을 하면서 공부는 안 했을까.

“센터 일을 하다 보니 학력도 학력이지만, 사회복지를 알아야 될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든지, 마음을 먹으니까 1년 만에 고검을 합격하고 대검도 합격했다. 그래서 대학은 사이버로 갔을까.

“아니요. 일을 하면서 사회복지과 교수님들과도 알게 되어 경북과학대학교 사회복지과 야간반에 다녔습니다.”

그동안 사회복지를 귀동냥으로 들었는데 2년제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편입을 해서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단다.

현재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대전에서 3층집을 하나 지어서 서울에 살던 어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2019년도 장애인활동지원인의 밤. ⓒ이복남에이블포토로 보기 2019년도 장애인활동지원인의 밤. ⓒ이복남
3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3층에는 그와 어머니가 살고, 2층에는 활동지원사 A 씨가 살고, 그리고 1층에는 지적장애인 4명이 살고 있단다.

1층에 지적장애인이 살다니 그들에게 세를 주었다는 것일까?

“일종의 그룹 홈 같은 것인데 몇 년 째 제 사비로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숙집 같은 것인가.

“수급자 장애인에게는 하숙집 형태도 안 된답니다.”

대부분의 생활비는 자신의 사비로 쓰고, 애들이 수급자인데 전기세 등 공과금 같은 것은 수급비에서 충당을 하고 영수증을 첨부해서 구청에 보고를 해야 된단다.

“애들 돈에 손도 안 댔는데 한번은 누군가가 고발을 해서 구청에서 감사도 나오고 해서 정말 골치가 아팠습니다.”

센터일도 벅찰 텐데 그런 골치 아픈 일을 왜 자처할까.

“첫째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 제가 안 하면 그 애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남성우 씨는 자신이 다친 것도 그렇고 지적장애아들과 함께 사는 것도 자기가 해야 될 몫이라고 했다.

그런데 같이 온 활동지원사 A 씨는 얼마 전에도 죽을 뻔 했다면서 어이없어 했다. A 씨는 2층에 살고 남성우 씨는 3층에 사는데 A 씨의 딸이 와서 외식을 하기로 했단다.

A 씨 : “외식을 나가면서 저녁이라도 챙겨주고 가려고 올라가니 어머니(남성우 씨 어머니)가 잔다고 해서 그냥 내려오려다가, 저녁을 먹고 자라고 하려고 방에 들어가 보니 사람이 죽어 있는 거예요.”

남성우 센터장. ⓒ이복남에이블포토로 보기 남성우 센터장. ⓒ이복남
남성우 씨는 대상포진에 걸려서 숨도 못 쉬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너무 놀라서 119에 전화를 하니 119가 갈 때까지 전화를 끊지 말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지시를 하더란다.

“119가 와서 차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가니까 양손을 다 묶어 놓았던데, 몸을 움직이는 것 같아서 A 씨가 묶인 손을 풀어 줬단다.

“목을 뚫었는데 가래가 차니까 섹션을 해야 되는데, 손을 안 풀어 줬다면 그대로 죽었을 겁니다.”

중증장애인에게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생존과 직결되고 있음을 몸소 경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은 살아 있으므로 사는 날까지는 일을 할 거란다. 유성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역사회 내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이 가능하도록 서비스 지원체제를 구축하여 그들의 독립생활을 이끌어 내어 지역 내 주민들과 더불어 발전하는 지역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주요사업으로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장애인이동지원서비스, 자립생활기술훈련, 장애인보장구수리사업, 동료상담가파견, 자립생활체험홈운영, 권익옹호, 정보제공사업 등을 하고 있다.

장애인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장애는 언제 누가 입을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므로, 주제넘은 것 같지만, 저처럼 너무 먼 길을 돌아오지 않도록 비장애인들이 평소에도 장애인에게 관심을 좀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배웠던 것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인데 장애인도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좀 알았으면 좋겠단다.

“능력은 안 되면서 눈만 높아서 세상을 원망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너는 안 돼’라는 말도 차마 못합니다. 그 말에도 장애인들은 상처를 받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장애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알고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단다.

남성우 씨, 그때는 당신이 장애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장애인이 되어 또 다른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자립생활을 위해 일하고 있으므로 그 일에 더욱 발전 있으시기를.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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