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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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달자립센터 작성일20-01-30 22:43 조회4,642회 댓글0건본문
배려의 용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1-29 13:40:14
잔뜩 가라앉은 흐린 날씨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 밤, 우산을 받쳐 든 채 길을 나섰다.
전동휠체어에 겨울비는 정말 최악이다. 우산을 써도 다리는 젖는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 같이 일하던 언니가 비가 오지도 않는데 전동휠체어에 항상 자신의 몸보다 큰 ‘장우산’을 들고 다니셔서 물었다.
“비도 않오는데 왜 우산을 들고 다니세요?”
언니는 우산을 스스로 쓸 수 없다. 그래서 비가 오면 누군가가 우산을 씌워 줘야 하는데 그 누군가를 위해서라고 했다. 즉, 우산을 누군가가 씌워 줘야 하는데 작은 우산을 써야 할 경우가 많아 같이 쓰고 가는 사람도 자신도 비를 제대로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장애인들의 전동휠체어를 보면 이것저것 달고 다니는데 이 짐은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 준비를 하지 않았을 때 도와주는 다른 사람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방지하고자 하는 작은 배려의 표현이기도 하다.
비오는 겨울에 길을 나서야 하는 버거움보다 더 힘듦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동네에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있어 오가다가 시각장애인분들을 종종 마주친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하고 나또한 그들을 도울 일이 없어 그대로 지나치는 일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혼자 서 다닌다.
시각장애인들이 다니는 맹학교에서는 혼자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다. 혼자 다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활동지원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해서 중요한 일을 위해 아껴두고 개인적인 외출에는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혼자다. 아니면 조금 더 잘 보이는 약시 장애인 친구와 다닌다. 약시라고 해봐야 조금 더 보일 뿐 어쨌거나 시각장애인이니 길을 가기 어려울 것이다.
학부 때 우리 과에 시각장애인이 4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늘 밝고 유쾌했다. 공부 역시 열심히 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장애를 별명으로 지어 불렀다. 그들은 스스로를 "맹군"이라고 불렀고, 나와 같은 지체장애인 친구들을 통틀어 "매비"라 불렀다.
스스로의 장애를 별명으로 지어 부를 만큼 그들은 그들의 장애를 당당하게 받아들였고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더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을 데리고 학교를 다녔으며 도움이 필요할 경우 기숙사, 교회, 커뮤니티를 이용해서 학교생활을 하였다.
당시 나는 시각장애인 학우들의 어려움을 잘 알지 못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교재나 자료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고 교수님이 칠판에 무슨 글을 쓰시는지도 잘 몰랐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오가며 마주치는 시각장애인들을 보며 그냥 길을 나서는 것 자체가 전쟁이겠다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길을 가다 노란 점자 블록을 보면 '저게 저기서 끊겨도 되나?' 싶은 곳에서 뚝 끊겨 있다. 전에 홋카이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거기에도 시각장애인이 있으니 당연히 점자블록이 있고 물건에는 점자가 찍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거리 곳곳에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한다는 점자블록은 어디로 가라는 건지, 어디서 서라고 하는 건지 뚝뚝 끊겨 있다.
눈이 보이던 보이지 않던 딱 보면 그냥 보여주기 위한 어떤 것이다. 하지만 홋카이도에서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길에도 길을 건너기 위한 건널목에도.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지체장애인이지만 시각장애인이 어떤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지 잘 모르는 “정안인”이다. 우리 동네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립맹학교”가 있음을 알고 있고 점자블록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도울 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학창시절의 보고 느꼈던 어려움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이라도 도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길에서 위험하게 길을 건너려고 하는 시각장애인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용기 또한 새해에는 갖기를 바란다.
전동휠체어에 겨울비는 정말 최악이다. 우산을 써도 다리는 젖는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 같이 일하던 언니가 비가 오지도 않는데 전동휠체어에 항상 자신의 몸보다 큰 ‘장우산’을 들고 다니셔서 물었다.
“비도 않오는데 왜 우산을 들고 다니세요?”
언니는 우산을 스스로 쓸 수 없다. 그래서 비가 오면 누군가가 우산을 씌워 줘야 하는데 그 누군가를 위해서라고 했다. 즉, 우산을 누군가가 씌워 줘야 하는데 작은 우산을 써야 할 경우가 많아 같이 쓰고 가는 사람도 자신도 비를 제대로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장애인들의 전동휠체어를 보면 이것저것 달고 다니는데 이 짐은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 준비를 하지 않았을 때 도와주는 다른 사람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방지하고자 하는 작은 배려의 표현이기도 하다.
비오는 겨울에 길을 나서야 하는 버거움보다 더 힘듦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동네에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있어 오가다가 시각장애인분들을 종종 마주친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하고 나또한 그들을 도울 일이 없어 그대로 지나치는 일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혼자 서 다닌다.
시각장애인들이 다니는 맹학교에서는 혼자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다. 혼자 다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활동지원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해서 중요한 일을 위해 아껴두고 개인적인 외출에는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혼자다. 아니면 조금 더 잘 보이는 약시 장애인 친구와 다닌다. 약시라고 해봐야 조금 더 보일 뿐 어쨌거나 시각장애인이니 길을 가기 어려울 것이다.
학부 때 우리 과에 시각장애인이 4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늘 밝고 유쾌했다. 공부 역시 열심히 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장애를 별명으로 지어 불렀다. 그들은 스스로를 "맹군"이라고 불렀고, 나와 같은 지체장애인 친구들을 통틀어 "매비"라 불렀다.
스스로의 장애를 별명으로 지어 부를 만큼 그들은 그들의 장애를 당당하게 받아들였고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더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을 데리고 학교를 다녔으며 도움이 필요할 경우 기숙사, 교회, 커뮤니티를 이용해서 학교생활을 하였다.
당시 나는 시각장애인 학우들의 어려움을 잘 알지 못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교재나 자료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고 교수님이 칠판에 무슨 글을 쓰시는지도 잘 몰랐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오가며 마주치는 시각장애인들을 보며 그냥 길을 나서는 것 자체가 전쟁이겠다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길을 가다 노란 점자 블록을 보면 '저게 저기서 끊겨도 되나?' 싶은 곳에서 뚝 끊겨 있다. 전에 홋카이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거기에도 시각장애인이 있으니 당연히 점자블록이 있고 물건에는 점자가 찍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거리 곳곳에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한다는 점자블록은 어디로 가라는 건지, 어디서 서라고 하는 건지 뚝뚝 끊겨 있다.
눈이 보이던 보이지 않던 딱 보면 그냥 보여주기 위한 어떤 것이다. 하지만 홋카이도에서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길에도 길을 건너기 위한 건널목에도.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지체장애인이지만 시각장애인이 어떤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지 잘 모르는 “정안인”이다. 우리 동네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립맹학교”가 있음을 알고 있고 점자블록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도울 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학창시절의 보고 느꼈던 어려움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이라도 도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길에서 위험하게 길을 건너려고 하는 시각장애인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용기 또한 새해에는 갖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