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없는 인생사는 케냐 지체장애 델피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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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달자립센터 작성일19-09-16 11:45 조회7,585회 댓글0건본문
포기 없는 인생사는 케냐 지체장애 델피나씨
어릴적 끔찍한 사건으로 장애…가족과 친척들 외면
구강전문의·장애아동센터장으로 활동…‘정치가 도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9-14 11:13:53
오늘 소개하는 세계속의 장애 인물은 아프리카 케냐의 구강전문의이자 장애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지체장애인 델피나씨입니다.
케냐의 중부지역인 메루에서 출생한 델피나 가이텡가씨는 올해 47살로 세 아들의 엄마이자 구강전문의이자 지역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정치 후보자입니다. 그녀의 인생 여정이 신문에 기사화되면서 케냐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화제가 되었습니다.
델피나씨가 2살 때쯤 성인인 남자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하체와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어린 델피나씨는 이 일들을 인지할 수 없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델피나의 어머니는 여러 차례 상처와 부상이 회복되도록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어린 델피나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다리의 부상은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다리의 장애는 성인이 된 후에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델피나씨는 가족들의 멸시와 장애인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가족과 친척들에게서 외면받았으, 이후 고아원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성장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고아원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를 매우 잘해 수재로 인정받았고 이 때문에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델피나씨는 결혼하고 곧 두 아들을 낳았지만 이혼하게 됩니다. 이혼 후 호주로 유학을 갔고 구강 치료 전문 의료인으로 거듭나서 케냐로 돌아오게 됩니다.
케냐에 돌아온 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셋째 아들을 낳았지만 기쁨도 잠시 이 아들이 뇌성마비 진단을 받습니다.
델피나씨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 일하는 병원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돌보며 또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은 장애아동센터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델피나씨는 현재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이 장애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년전 델피나씨는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낙선했습니다. 첫번째 낙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음 선거에 후보자로 나가기 위해 지역의 지도자로서, 장애인 활동가로서 정치적 역량을 키우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체 장애와 아들의 장애, 결혼과 이혼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전문 의료인으로 자리 잡은 델피나씨의 인생은 말 그대로 포기하지 않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영리단체를 세워 장애아동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녀의 지치지 않는 활동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델피나씨의 인생 여정에 박수를 보내리라고 생각합니다.
케냐의 중부지역인 메루에서 출생한 델피나 가이텡가씨는 올해 47살로 세 아들의 엄마이자 구강전문의이자 지역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정치 후보자입니다. 그녀의 인생 여정이 신문에 기사화되면서 케냐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화제가 되었습니다.
델피나씨가 2살 때쯤 성인인 남자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하체와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어린 델피나씨는 이 일들을 인지할 수 없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델피나의 어머니는 여러 차례 상처와 부상이 회복되도록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어린 델피나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다리의 부상은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다리의 장애는 성인이 된 후에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델피나씨는 가족들의 멸시와 장애인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가족과 친척들에게서 외면받았으, 이후 고아원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성장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고아원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를 매우 잘해 수재로 인정받았고 이 때문에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델피나씨는 결혼하고 곧 두 아들을 낳았지만 이혼하게 됩니다. 이혼 후 호주로 유학을 갔고 구강 치료 전문 의료인으로 거듭나서 케냐로 돌아오게 됩니다.
케냐에 돌아온 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셋째 아들을 낳았지만 기쁨도 잠시 이 아들이 뇌성마비 진단을 받습니다.
델피나씨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 일하는 병원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돌보며 또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은 장애아동센터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델피나씨는 현재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이 장애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년전 델피나씨는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낙선했습니다. 첫번째 낙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음 선거에 후보자로 나가기 위해 지역의 지도자로서, 장애인 활동가로서 정치적 역량을 키우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체 장애와 아들의 장애, 결혼과 이혼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전문 의료인으로 자리 잡은 델피나씨의 인생은 말 그대로 포기하지 않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영리단체를 세워 장애아동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녀의 지치지 않는 활동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델피나씨의 인생 여정에 박수를 보내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