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 ‘원가정복귀’ 아니면 ‘시설입소’? “탈시설권리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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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달자립센터 작성일22-05-19 23:11 조회8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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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은 집 될 수 없어… 잠시 위기모면 하는 곳일 뿐”
청소년 탈시설권리 및 주거권 보장 정책, 하나도 없다
서울·인천시장 및 경기도지사 후보 향해 정책요구안 발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아래 청주넷) 등 시민사회단체 117곳이 청소년 탈시설권리와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1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인천시장 및 경기도지사 후보를 향해 “청소년의 탈시설권리 보장하고 지원주택 공급하라”고 요구했다.
- 한 해 12만 명 청소년 길거리에… 그러나 대안은 시설뿐
여성가족부 2020년 통계에 따르면 한 해 12만 명이 넘는 청소년이 폭력과 방임 등 다양한 이유로 집을 나와 주거위기 상황에 놓이고 있다. 청소년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 자유와 존엄을 찾기 위해 폭력적이고 무관심한 집에서 탈출했다. 안전하기 위해 나온 사회에서는 또 다른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에서 친절을 베풀겠다고 다가온 사람들로부터 외려 수많은 폭력을 당했다. 살기 위해 일자리를 구했지만 부당한 대우 때문에 지속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수정 청주넷 청소년활동가 또한 원가정을 나온 후 겪은 위험에 대해 증언했다. 수정 활동가는 “내 삶이 존중되길 바라며 혈연가족을 떠났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주소 이전을 할 수 없었고, 안전하게 일할 수도 없었다. 나답게 살고자 집을 나왔지만 집 밖에서도 나답게 살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길거리에서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위기에 놓인 청소년에게 대안은 시설뿐이었다. 수정 활동가는 “결국 시설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설 또한 집이 될 순 없었다. CCTV가 늘 켜져 있었고 언제나 감시당했다. 밥은 정해진 시간에 같이 먹어야 했고 휴대전화는 압수당했다. 퇴소한다고 하니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거나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퇴소할 수 있다고 했다”며 “가족이나 시설 안에서 통제받고 관리·감독받는 건 보호가 아니다. 방임이고 폭력이다”라고 지적했다.
청소년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안전하기 위해 찾아갔던 시설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많은 규칙을 지키며 지내야 했다. 답답해서 오래 살 수가 없었다. 시설은 잠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곳이었을 뿐, 계속 살 수 있는 집이 될 순 없었다”고 성토했다.
- “청소년 탈시설권리 보장 위해 지원주택 제공하라”
한국은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대한민국 아동권리협약 제5·6차 국가보고서 심의 결과’에서 아동 탈시설 전략을 권고했다. 즉, 한국 정부 스스로 비준한 국제협약의 권고내용에 따라, 중앙정부뿐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청소년의 탈시설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청소년을 위한 주거지원 정책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다. ‘원가정 복귀’와 ‘시설 입소’ 말고는 다른 대안도 없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 주거권 보장’은 후보들의 공약으로도 제대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정제형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아동·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해 각 후보자에게 정책을 제안했지만 몇 명의 후보만이 이에 호응했다”고 말했다.
현행법에서조차 청소년의 주거권은 청소년 자신이 아닌 부모에게 있다. 민법 914조 거소지정권(타인의 거소를 지정하는 권리)에는 ‘자(녀)는 친권자(부모 등 보호자)의 지정한 장소에 거주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다.
난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는 “법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의 주거권 자체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청소년의 주거는 정상가족 형태의 가정 아니면 시설뿐”이라며 “이런 사회는 독립을 고민하거나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위험한 상태, 약자의 위치로 내몬다. 이 사회가 말로는 청소년을 보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청소년 주거권을 외면하고 내버려 둔다”고 비판했다.
이에 청소년들과 시민사회단체 117곳은 서울·인천시장 및 경기도지사 후보를 향해 △주거위기를 겪는 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조례 제·개정 △아동·청소년을 위한 지원주택 시범 공급 △주거위기를 겪는 아동·청소년 위한 주거복지서비스 정책 수립 및 정비 △아동·청소년 주거복지센터(가칭) 설립 △아동·청소년 탈시설권리 선언과 탈시설 계획 수립 및 시행 등 구체적 정책 제시 등을 요구했다.
조례 제·개정의 경우, 구체적으로는 ‘주거위기를 겪는 아동·청소년’을 ‘주거약자’의 범위에 포함하길 요구했다. 지원주택은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장애인, 노인, 홈리스 등 주거취약계층에 공급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홈리스 상태에 놓인 아동·청소년에게도 지원주택과 주거유지지원서비스를 제공하라”고 했다. 또한 청소년 탈시설권리 및 주거권 보장 정책들을 시행하기 위해 각 지자체에 책임부서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청소년들은 기자회견 후 이번 지방선거를 맞아 청소년 600여 명이 참여한 ‘청소년 주거권 정책 앙케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청소년들은 주거정책에 관해 ‘청소년의 주거권을 법으로 보장하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문항에 가장 많이 응답했다(100표). ‘주거위기를 겪는 청소년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확보’, ‘주거지원과 함께 다양한 복지를 연결해주는 청소년주거복지센터 설치’가 각 90표로 뒤를 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탈시설 지원 정책 마련’이 87표로 3위를 기록했다.